루트비히 포이어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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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인류학적 종교 비판가이다. 그는 저명한 법학자의 아들이자, 수학자와 화가의 친족이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베를린 대학교에서 헤겔의 영향을 받았으며, 에를랑겐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기독교의 본질을 인간의 자기 소외와 투사의 산물로 분석한 대표작 《기독교의 본질》을 통해 종교 비판과 무신론에 기여했다. 그의 사상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현대 미디어 연구에서도 재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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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포이어바흐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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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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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루트비히 안드레아스 폰 포이어바흐 |
출생일 | 1804년 7월 28일 |
출생지 | 란츠후트, 바이에른 선제후국 |
사망일 | 1872년 9월 13일 (68세) |
사망지 | 뉘른베르크 근처 레헨베르크, 독일 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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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 |
분야 | 서양 철학 |
학파 | 인류학적 유물론 세속적 인본주의 청년 헤겔학파 (1820년대) |
주요 관심사 | 종교 철학 |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 | 모든 신학적 개념은 인류학적 개념의 물상화 |
학력 |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에를랑겐 대학교 (Ph.D./Dr. phil. habil., 1828) |
박사 학위 논문 제목 | De infinitate, unitate, atque, communitate, rationis (이성의 무한성, 통일성 및 보편성에 대하여) |
박사 학위 논문 발표 시기 | 1828년 7월 |
교수 자격 논문 제목 | De ratione una, universali, infinita (유일하고 보편적이며 무한한 이성에 대하여) |
교수 자격 논문 URL | De ratione una, universali, infinita 원문 |
교수 자격 논문 발표 시기 | 1828년 11월 |
영향 준 인물 |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독일 관념론, 기타 다수 |
영향을 받은 인물 | 샤를마리 르콩트 드 릴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미하일 바쿠닌 막스 슈티르너 요제프 디츠겐 마르틴 부버 기타 다수 |
2. 생애
포이어바흐는 저명한 법학자 파울 요한 안젤름 리터 폰 포이어바흐의 셋째 아들이자, 수학자 카를 빌헬름 포이어바흐의 형제이며, 화가 안젤름 포이어바흐의 삼촌이었다.[13] 그의 형제들은 학문 및 과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 요제프 안젤름 포이어바흐 (1798–1851): 고고학 및 언어학, 그의 아들이 화가 안젤름 포이어바흐 (1829–1880)였다.
- 에두아르트 아우구스트 포이어바흐 (1803–1843): 법학
- 프리드리히 하인리히 포이어바흐 (1806–1880): 언어학 및 철학
그는 또한 세 명의 누이가 있었다: 레베카 막달레나 "헬레네" 포이어바흐 폰 도베네크 (1808–1891), 레오노레 포이어바흐 (1809–1885), 그리고 엘리제 포이어바흐 (1813–1883).
1823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이듬해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베를린 대학교에서 헤겔의 강의를 듣고 영향을 받아 철학 연구에 힘쓰는 동시에, 에를랑겐 대학교에서 생리학을 비롯한 자연과학에도 친숙해졌다. 1828년 에를랑겐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듬해부터 동 대학에서 사강사를 맡았다.
1830년 익명으로 출판한 『죽음 및 불멸에 관한 고찰』[21]이 전통적인 기독교를 비판하여 문제가 되어 실직했다. 이후 저술가로 생계를 꾸려갔으며, 1837년 도자기 공장을 경영하는 여성과 결혼하여 공장 경영에도 참여했다.
1839년 청년 헤겔 학파의 기관지 『할레 연보』에서 『헤겔 철학 비판을 위하여』를 발표[22]했다. 1841년 주저 『기독교의 본질』을 간행하여 청년 헤겔 학파를 비롯한 많은 젊은 학자들에게 환영받았으나, 보수적인 학자나 신학자들로부터는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1843년 『철학 개혁을 위한 잠정적 테제』, 『장래 철학의 근본 명제』를 간행[23]하며 인간주의적 유물론의 대표적인 존재가 되었다. 1860년 아내가 경영하는 공장이 파산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866년 『관념론과 유물론』을 발표했지만, 이후 병석에 누워 빈곤 속에서 뉘른베르크 근교의 레헨베르크에서 사망했다.
2. 1. 교육
포이어바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루터교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을 공부했다.[13][14] 카를 다우프 교수의 영향으로 헤겔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대학교에서 헤겔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2년 후, 헤겔의 영향력은 약해지기 시작했고, 포이어바흐는 청년 헤겔학파에 가입하여 헤겔 철학의 급진적인 부분을 발전시켰으며, 특히 기독교를 대체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는 친구에게 "나는 더 이상 신학을 공부할 수 없다. 나는 자연을 내 마음에 품고 싶다... 그리고 자연과 함께 인간, 인간의 모든 자질을 품고 싶다."라고 썼다.[15]그는 에를랑겐 대학교에서 자연 과학을 공부하고, 1828년 7월 25일 ''De infinitate, unitate, atque, communitate, rationis'' (''이성의 무한성, 통일성 및 보편성에 관하여'')으로 박사 학위를, 1828년 11월에는 논문 ''De ratione una, universali, infinita'' (''하나의, 보편적인, 무한한 이성'')로 하빌리타치온을 받았다.[15]
2. 2. 초기 저술 활동 및 결혼
1830년 익명으로 출판한 《죽음과 불멸에 대한 고찰 (Gedanken über Tod und Unsterblichkeit)》에서 개인의 불멸을 부정하고 스피노자가 말한 자연으로의 재흡수를 주장하여 학계에서 비판받았다.[21] 《근세철학사(Geschichte der neueren Philosophie, 1833-1837)》, 《아벨라르와 엘로이즈(Abelard und Heloise,1834)》 등을 저술하며 학문적 활동을 이어갔다. 1837년 결혼 후, 아내의 재정적 지원으로 뉘른베르크 인근 브루크베르크에서 작은 도자기 공장을 운영하며 생활했다. 《피에르 벨(Pierre Bayle, 1838)》과 《철학과 기독교 (Philosophie und Christentum, 1839)》를 저술하며 신학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심화시켰다.[22] 그는 이 책들을 통해 "기독교는 사실상 이성뿐만 아니라 인류의 삶에서도 오랫동안 사라졌으며, 고정 관념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2. 3. 『기독교의 본질』과 종교 비판
1841년 포이어바흐는 대표작 《기독교의 본질(Das Wesen des Christentums)》을 출판하여 종교의 본질을 인간학적으로 분석하고, 신을 인간의 자기 소외와 투사의 산물로 규정했다.[16] 이 책은 조지 엘리엇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고,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국제적인 반향을 일으켰다.[16]1부에서는 "종교의 진실 혹은 인류학적 본질"을 주제로, 신이 인간 본성의 욕구와 특징을 반영한다고 주장하며 종교를 인간학적으로 해석했다. 그는 "오성(悟性)을 지닌 존재로서", "법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로서", "사랑으로서" 등 여러 측면에서 신을 다루었다. 인간이 지성의 능력을 신의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간이 신보다 의식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논의하며, 인간은 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자기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다고 설명한다. 포이어바흐는 모든 측면에서 신은 인간 본성의 욕구나 특징에 대응한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신 안에서 만족을 찾으려면, 신 안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신은 인간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의 내적 본성을 외부로 투사(projection)한 것이다. 신과 초월적인 존재는 인간의 자비심에 의존하며, 포이어바흐는 이러한 투사를 만들어진 환상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자비롭지도, 공정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신은 신이 아니다"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특징들은 신성한 관계 때문에 갑자기 신적인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인간이 지성을 갖추고 신성함의 의미를 종교에 적용하지만, 종교가 인간 자체를 신성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특징들은 그 자체가 신성하기 때문에 신을 신성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2부에서는 "종교의 거짓 혹은 신학적인 본질"을 주제로, 신을 인간과 분리된 존재로 보는 관점을 비판하고 계시, 성사와 같은 종교적 믿음을 미신과 부도덕으로 연결시켰다.[16]
1844년 막스 슈티르너는 《유일자와 그의 소유(Der Einzige und sein Eigentum)》에서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에 모순점이 많음을 지적하며 비판했다.[16]
2. 4. 1848년 혁명 이후
1848년 혁명 시기,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정통주의를 비판하여 혁명파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았고, 정치 지도자로서의 자질도 부족했다.[17]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기간 동안 그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종교에 관한 공개 강연을 했다. 의회가 해산된 후, 그는 브루크베르크로 돌아가 과학 연구와 《신족 계보학 (Theogonie, 1857)》 집필에 몰두했다.1860년, 그가 살던 곳 근처의 도자기 공장이 파산하면서 포이어바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친구들의 도움과 공적인 기부로 생계를 유지했다.[17] 1866년, 그는 마지막 저서 《신성, 자유, 그리고 불멸 (Gottheit, Freiheit und Unsterblichkeit)》을 출판했다. 1870년에는 독일 사회민주당에 가입하였다.[17] 1872년 9월 13일, 포이어바흐는 뉘른베르크에서 사망하여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와 같은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사상
포이어바흐는 종교 현상을 인류학적으로 새롭게 해석하려 했다. 슐라이어마허의 테제를 따라, 포이어바흐는 종교가 본질적으로 무한한 주관성 속의 감정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 감정은 이해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종교적 믿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감정 너머에는 상상력이 있으며, 이것이 "신"과 신성한 것에 대한 투영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창조자이다.
포이어바흐는 스승이었던 헤겔이 추상적인 정신·이념을 주체로 삼고, 그 자기 전개 과정에 따라 역사, 자연,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헤겔 철학에서 추상적인 정신은 본래 인간의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여겨진다고 보고, 이를 "인간의 자기 소외"라고 비판했다.
1848년의 3월 혁명에는 관심을 보였지만, 평생 동안 정치적·사회적인 입장에 관심이 없었다. 마르크스 등 혁명가, 정치가와 함께 행동하지는 않았지만, 역사 유물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만년에는 아우구스트 베벨 등이 결성한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에 입당했다.
4. 영향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에 큰 영향을 받았지만, 그가 유물론에 대해 모순된 태도를 보인 점은 비판했다.[24]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이 책이 얼마나 해방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열광은 일반적이었다. 우리 모두는 즉시 포이어바흐주의자가 되었다."라고 언급했다.[20]
포이어바흐는 스승이었던 헤겔의 추상적인 정신, 이념을 주체로 삼고, 그 자기 전개의 과정에 따라 역사나 자연,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방식에 의문을 가졌다. 헤겔 철학에서는 이러한 추상적인 정신이 원래 인간의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생각된다고 보고, "인간의 자기 소외"라는 표현으로 비판했다.
1848년 3월 혁명에 관심을 보였지만, 포이어바흐는 평생 동안 정치적, 사회적인 입장에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마르크스 등 혁명가, 정치가와 행동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 등의 역사 유물론에 미친 영향은 크다. 만년에는 아우구스트 베벨 등이 결성한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에 입당했다.
최근에는 포이어바흐가 현대 미디어 이론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19]
한국에서는 주로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과 인본주의 사상이 수용되었다. 이는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하고,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옹호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종교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조하는 데 포이어바흐의 사상이 활용되기도 했다.
4. 1. 마르크스와 엥겔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나, 그의 유물론에 대한 모순된 태도는 비판했다.[24]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이 책이 얼마나 해방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열광은 일반적이었다. 우리 모두는 즉시 포이어바흐주의자가 되었다."라고 언급했다.[20]포이어바흐는 스승이었던 헤겔의 추상적인 정신·이념을 주체로 삼고, 그 자기 전개의 과정에 따라 역사나 자연,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방식에 의문을 품었다. 헤겔 철학에서는 이러한 추상적인 정신이 원래 인간의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으로 생각된다고 보고, "인간의 자기 소외"라는 표현으로 비판했다.
1848년 3월 혁명에 관심을 보였지만, 포이어바흐는 평생 동안 정치적·사회적인 입장에 관심이 없었다. 따라서 마르크스 등 혁명가, 정치가와 행동을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마르크스 등의 역사 유물론에 미친 영향은 크다. 만년에는 아우구스트 베벨 등이 결성한 마르크스주의 정당인 독일 사회주의 노동자당에 입당했다.
4. 2. 현대 사상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나, 포이어바흐가 유물론에 대해 모순된 태도를 보인 점은 비판하였다.[24]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저서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이 책이 얼마나 해방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위해서는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열광은 일반적이었다. 우리 모두는 즉시 포이어바흐주의자가 되었다."라고 언급했다.[20]최근에는 포이어바흐가 현대 미디어 이론의 선구자 중 한 명으로 재해석되기도 한다.[19]
4. 3. 한국에서의 수용과 영향
한국에서는 주로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과 인본주의 사상이 수용되었다. 이는 기독교의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하고,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옹호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종교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비판하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조하는 데 포이어바흐의 사상이 활용되기도 했다.5. 주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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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출판 연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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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 ratione una, universali, infinita'' (취임 논문) || 1828년 || [https://archive.org/details/derationeunauni00feuegoog 구글에서 디지털화] 겐트 대학교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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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danken über Tod und Unsterblichkeit'' (죽음과 불멸에 대한 생각) || 18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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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컨에서 베네딕트 스피노자까지의 근대 철학사 || 1833년 || [https://books.google.com/books?id=mnEPAAAAQA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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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또는 작가와 인간'' || 18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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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 헤겔 비판'' || 1835년 || 2판, 1844. [https://books.google.com/books?id=KWpJAAAAMAAJ 미시간 대학교]; [https://books.google.com/books?id=kKtRAAAAMAAJ 위스콘신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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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철학사; 라이프니츠 철학의 묘사, 발전 및 비판'' || 1837년 || [https://archive.org/details/bub_gb_dvdRAAAAMAAJ 위스콘신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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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에르 베일'' || 1838년 || [https://archive.org/details/pierrebaylenach00feuegoog 캘리포니아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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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 기독교에 관하여'' || 183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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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본질'' || 1841년 || 2판, 1848 ([http://home.rhein-zeitung.de/~rdober/relkrit/feuerb2.html 온라인]).
The Essence of Christianity영어 (1854). 번역 마리안 에반스. [https://archive.org/details/a581696600feneuoft 세인트 메리]. 2판, 1881. [https://archive.org/details/bub_gb_ArMHAAAAQAAJ 옥스퍼드].
|-
| ''미래 철학의 원리'' || 1843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953883 갈리카].
|-
| ''철학 개혁을 위한 예비 명제'' || 1843년
|-
| ''루터의 의미에서의 믿음의 본질'' || 1844년 || [https://books.google.com/books?id=7bMRAAAAYAAJ 하버드].
|-
| ''종교의 본질'' || 1846년 || 2판, 1849. [https://archive.org/details/bub_gb_ft7beehJ6TIC 스탠퍼드].
|-
| ''기독교의 본질에 대한 설명과 보충'' || 18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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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전집'' || 1846년–1866년 ||
권 | 출판 연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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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 1846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18c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ooiU1XbPyOEC NYPL]. |
2권 | 1846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19q 갈리카]. |
3권 | 1847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20x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F2ggn3KnjLQC NYPL]. 1876, [https://books.google.com/books?id=jn0NAAAAQAAJ 옥스퍼드]. |
4권 | 1847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218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jn0NAAAAQAAJ 옥스퍼드]. |
5권 | 1848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22m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tUUQhN7UESEC NYPL]. |
6권 | 1848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23z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GSEMXsBf-eMC NYPL]. |
7권 | 1849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249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tn0NAAAAQAAJ 옥스퍼드]. |
8권 | 1851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25n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TTi7wIFeSdUC NYPL]. |
9권 | 1857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260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lfcXqTMvT6wC NYPL]. |
10권 | 1866년 | [http://gallica.bnf.fr/ark:/12148/bpt6k77827b 갈리카]; [https://books.google.com/books?id=QYINAAAAYAAJ NYPL]. |
|-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의 서신 및 유고집'' || 1874년 || 2권. [https://books.google.com/books?id=cjUCAAAAQAAJ 옥스퍼드]. 1권. [https://books.google.com/books?id=1cek60LKbUkC NYPL]. 2권. [https://archive.org/details/ludwigfeuerbach06feuegoog NYPL].
|-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크리스티안 카프의 서신'' || 1876년 || [https://books.google.com/books?id=xi4RAAAAYAAJ 하버드]; [https://archive.org/details/bub_gb_SDoBAAAAQAAJ 옥스퍼드].
|-
| 『헤겔 철학의 비판 - 다른 1편』 || 1933년 || 사노 후미오 역, 이와나미 문고.
|-
| 『기독교의 본질』 상・하권 || 1965년 || 후나야마 신이치 역, 이와나미 문고.
|-
| 『미래 철학의 근본 명제 - 다른 두 편』 || 1967년 || 마츠무라 카즈토・와다 가쿠 역, 이와나미 문고.
|-
| 『관념론과 유물론』 || 1977년 || 후나야마 신이치 역, 이와나미 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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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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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bridge University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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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gious and Secular Humanism – What's the difference?
http://www.robertm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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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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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denverla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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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uerbach: The Roots of the Socialist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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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dwig Feuerbach's conception of the religious alienation of man and Mikhail Bakunin's philosophy of negation
https://www.jsto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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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twork of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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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l and W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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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Ludwig Andreas Feuerbach
http://plato.stan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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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led to be Holy in the World: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History
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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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H. 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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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ce the Means?" Ludwig Feuerbach and the Origin of Media Theory
[20]
웹사이트
Ludwig Feuerbach and the End of Classical German Philosophy - Part 1: Hegel
https://marxists.arc[...]
[21]
서적
ルードヴィヒ・フォイエルバッハの哲学 上
新地書房
[22]
서적
ルードヴィヒ・フォイエルバッハの哲学 上
新地書房
[23]
서적
ルードヴィヒ・フォイエルバッハの哲学 上
新地書房
[24]
웹사이트
Feuerbach, Ludwig
http://www.marxists.[...]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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